구현의 DNA
초등학생 때 내 방은 늘 레고 블록과 과학상자로 어질러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 방 불을 끄는 장치를 고안해 보기도 했고, 유치하지만, 변신하는 자동차도 만들어봤다. 한동안은 루브 골드버그 장치 만들기에 빠져 있던 기억도 난다. 머릿속에 있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게 나에겐 최고의 놀이였다.
마인크래프트 속 코딩 경험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마인크래프트를 하던 때, '더 편하고 빠르게 건물을 지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공간 채우기, 공간 복사하기 같은 명령어를 찾아보고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전투 미니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팀을 나누고 각 진영으로 순간이동 시키는 명령어, 게임을 초기화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령어를 짜서 커맨드 블록에 저장했고, 원했던 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명령어를 짜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일부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그때는 그게 코딩인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스크립트로 코딩을 경험한 첫 순간이었다.
코딩을 배운 첫 수업
고등학교 1학년 정보 시간에 처음으로 정식 코딩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초심자도 따라가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코딩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었고, 실습으로 C 언어 기초 100제를 풀며 프로그래밍의 기본기를 익혀 갔다.
실습 문제집을 미리 다 풀어낸 뒤에는 친구들을 도와주며 설명해 주는 시간이 즐거웠다. 정보 과목에서 총점 만점을 받으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프로젝트에서 마주한 격차
소프트웨어 인재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개발 동아리에 가입했다. 1학년 여름방학에 앱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UI 구현, 서버 구축, 크롤링, 깃 협업 등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라 막막했다. 선배들이 물리 서버를 다루고 앱을 완성해 스토어에 배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력 차이를 크게 실감했다. 결국 프로젝트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 못한 채 끝났고, 본격적인 개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밤을 새웠던 이유
온라인 강의를 듣고 개인 프로젝트를 하나씩 완성해 가면서,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방학 동안에는 주로 웹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개발이 너무 재미있어서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개발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나만의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 더 큰 행복이었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고, 몰입할 수 있었다.
이틀 연속 밤을 새우자, 어머니가 강제로 컴퓨터를 끄셨던 기억도 있다.
완성한 서비스를 배포했을 때 학교 커뮤니티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GA로 하루에 천 명 이상 접속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비록 며칠뿐이었지만) 짜릿함과 성취감을 느꼈다. '앞으로도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사용자가 생기는 경험
3학년 때 스타트업 외주로 간호사 근무표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웹 서비스를 구축했다. 기획부터 개발, 스테이징, QA, 상용 배포, CS 대응까지 서비스 운영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배포 후에는 6천 명 이상의 사용자가 가입했는데, 내가 만든 서비스가 실제 현장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여러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오히려 내가 감사함을 느꼈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개발을 통해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같은 시기에는 학부에서 사용하는 출석 관리 서비스와 장학금 신청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했다. 졸업 전에는 후배 개발자에게 인수인계를 마쳤고, 지금도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혼자에서 팀으로
4학년 때는 Apple Developer Academy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가 아닌 팀원들과 함께했던 경험을 통해, 팀을 세워 나가는 법과 협업하며 개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2024년부터는 메를로랩에 입사해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며, 사물인터넷 도메인에서 실무 개발 경험을 쌓고 있다. 실무를 하면서 느낀 것은, 개인의 개발 실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팀을 만들고, 개선점을 찾아내고 팀의 효율을 높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팀과 함께 몰입하며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